신광수 (조선 문인) [申光洙]
신광수(1712~1775)는 조선 영조시대의 문인으로서 우리나라 고전문학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낳은 대표적인 문인이다. 호가 석북(石?)인 그는 첨지 박고의 아들로서 다섯 살
때 이미 쓰고 읽을 줄 알았으며, 한시와 서화에 뛰어나 동방의 백낙천(白樂天)이
라 불릴 정도로 문명(文名)이 온 나라에 자자했다고 한다.
그가 살던 고향은 신석초 시인의 마을이기도 한 현재의 화양면 활동리이다.
당시 그 곳의 지명이‘그 마을의 글을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문동(崇文洞)으로 불리어졌던 사실은
신광수의 문학적 재능이 그만큼 남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과시(科詩)에 능하였고,
「관산융마(關山戎馬)」는 신광수의 대표작으로 당시 창(唱)으로 불릴 정도로 널리 애송되었다.
그는 농촌의 피폐상, 관리의 부정과 횡포, 하층민의 고통 등 당시의
사회상을 사실적인 필치로 잘 담아냈다.
그의 시에 대하여 교우의 한 사람이었던 번암 채제공은 평하기를,
“득의작(得意作)은 삼당(三唐)을 따를 만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라도 명나라의 이반룡(?攀龍)과 왕세정(王世貞)을 능가하며
동인(東人)의 누습(陋習)을 벗어났다.”고 하였다.
또한 신광수는‘시조’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조선조 시가사(詩歌史)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석북집(石?集)』의 ‘관서악부(關西?府) 15’에 그 내용이 기록
되어 있다. 석북공이라 하면 지금도 인근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며 후손
들도 시문에 뛰어난 분들이 많았다. 현대시인인 신석초 그의 8대손이다.
조선 문신 신광수(申光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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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수(申光洙.1712.숙종 38∼1775.영조 51)
조선 영조(英祖) 때 문신. 자 성연(聖淵). 호 석북(石北)ㆍ오악산인(五嶽山人). 본관 고령(高靈). 첨지 호(澔)의 아들, 다섯 살 때 쓱4h 읽을 줄 알고, 말하는 것이 사람을 놀라게 하였으며, 서(書)ㆍ화(畵)에 뛰어나 문명(文名)이 온 나라에 자자하였다.
음관(蔭官)으로 재랑(齋郞)이 되고, 1764년(영조 40) 금부도사(禁府都事)로서 사신으로 탐라(耽羅: 제주도)에 가서 그곳의 풍토ㆍ산천ㆍ조수(鳥獸)ㆍ항해(航海) 상황을 적어 <부해록(浮海錄)>을 지었다.
연천현감(連川縣監)을 거쳐 1772년(영조 48) 기로과(耆老科)에 급제하고 통정(通政)ㆍ우승지를 거쳐 돈령도정(敦寧都正)에 이르렀다.
조선 영조 때의 문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 또는 오악산인(五嶽山人).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호(澔)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郎) 이휘(李徽)의 딸이다. 집안은 남인으로 초기에는 벼슬길이 막혀 향리에서 시작에 힘쓰며, 채제공(蔡濟恭)ㆍ이헌경(李獻慶)ㆍ이동운(李東運) 등과 교유하였다. 또한, 윤두서(尹斗緖)의 딸과 혼인하여 실학파와 유대를 맺었다.
39세 때 진사에 올라 벼슬을 시작하였으며, 49세에 영릉참봉(寧陵參奉)이 되고, 53세에 금오랑(金吾郎)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표류하여, 제주에 40여일 머무르는 동안 <탐라록(耽羅錄)>을 지었다. 그 뒤 선공봉사(繕工奉事)ㆍ돈녕주부(敦寧主簿)ㆍ연천현감(漣川縣監)을 지냈다. 1772년 61세 때 기로과(耆老科)에 장원하여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다. 이로부터 조정에서는 문장의 신하를 얻었다고 하였고, 영조의 대우가 대단하였다. 이때 서울에 거주할 집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 왕으로부터 집과 노비를 하사받았다. 그 뒤 우승지ㆍ영월부사를 역임하였다.
시명이 세상에 떨쳤는데 특히 과시(科詩)에 능하였고,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歎關山戎馬)>는 창(唱)으로 널리 불렸다. 그는 사실적인 필치로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농촌의 피폐상, 관리의 부정과 횡포 및 하층민의 고난을 시의 소재로 택하였다. 악부체(樂府體)의 시로서는 <관서악부(關西樂府)>가 유명하다.
그의 시에 대하여 교우의 한 사람이었던 채제공은 평하기를, “득의작(得意作)은 삼당(三唐)을 따를만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라도 명나라의 이반룡(李攀龍)과 왕세정(王世貞)을 능가하며 동인(東人)의 누습을 벗어났다.”고 하였다. 동방의 백낙천(白樂天)이라는 칭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당시의 현실을 담고 있거나 우리나라의 신화나 역사를 소재로 하여 민요풍의 한시로 표현하고 있어, 한문학사상 의의가 매우 크다.
【문집】<석북집(石北集)>(16권 8책)
【저서】<석북과시집>(1책)
[출처] 조선 문신 신광수(申光洙)
-----------------------------------------------------------------------------------------------------------신광수 申光洙
1712(숙종 38) 서울~1775(영조 15) 경기 교하.
조선 영조 때의 문인.
궁핍과 빈곤 속에서 전국을 유람하며, 민중의 애환과 풍속을 시로 절실하게 노래했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오악산인(五嶽山人). 아버지 호(澔)와 어머니 성산이씨(星山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글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13세인 1724년 가세가 기울어 낙향했다.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1746년 한성시(漢城試)에서 〈관산융마 關山戎馬〉로 2등 급제했는데, 이 시는 당시에 널리 읊어졌으며 과시(科詩)의 모범이 되었다. 1750년 비로소 진사에 급제했으나, 이후로 다시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후 시골에서 칩거생활을 했으나, 갈수록 궁핍해져서 가산과 노복들을 청산하고 땅을 빌려 손수 농사를 지었다. 이때 몰락양반의 빈궁과 자신의 처지를 읊은 〈서관록 西關錄〉을 지었는데, 이 작품이 뒷날 역작인 〈관서악부〉를 짓는 계기가 되었다. 음보(蔭補)로 영릉참봉(寧陵參奉)에 임명되었고 이때 벗들과 여강에서 소일하며 〈여강록 驪江錄〉을 지었다. 악부체 시인 〈금마별가 金馬別歌〉도 이 시기에 지어졌다.
1763년 사옹봉사(司瓮奉事)가 되었고, 다음해에 금부도사로 제주에 가서 45일간 머물면서 제주민의 고충과 풍물을 노래한 〈탐라록 耽羅錄〉을 지었으며, 4월에는 선공봉사(繕工奉事)가 되었다. 1765년에 예빈직장(禮賓直長)이 되고 1767년에는 연천(連川) 현감이 되었다. 1772년 2월 어머니의 권유로 기로과(耆老科)에 응시하여 갑과(甲科) 1등으로 뽑혔다. 3월에 돈령도정(敦寧都正)이 되었는데, 영조가 궁핍한 사정을 알고 가옥과 노비를 하사했다. 다시 병조참의에 오르고 9월에 영월부사(寧越府使)에 임명되었다. 1774년 관서지방의 풍속·고적·고사 등을 소재로 한 〈관서악부 關西樂府〉를 지었다. 1775년 우승지에까지 올랐다. 저서인 〈석북집〉은 시인으로 일생을 보내면서 지은 많은 시가 실려 있는데, 특히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향토의 풍물에 대한 애착을 느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민중의 애환을 그린 뛰어난 작품집이다.
崍口所見 래구소견
申光洙 신광수 1712~1775
靑裙女出木花田 청군여출목화전 푸른 치마 입은 여자, 목화밭을 나와
見客回身立路邊 견객회신립로변 客을 보고, 몸을 돌려 길가에 서있네
白犬遠隨黃犬去 백견원수황견거 흰 개는 멀리, 누런 개 따라 가다가
雙還更走主人前 쌍환갱주주인전 짝 지어 다시, 다시 주인 앞으로 달려오네
投宿山寺 투숙산사 산사에 머물며
申光漢 신광한 1484~1555
少年常愛山家靜 소년상애산가정 젊은 날엔 산집의 고요함이 좋아서
多在禪窓讀古經 다재선창독고경 禪窓에서 옛 경전을 많이도 읽었었네
白髮偶然重到此 백발우연중도차 흰 머리로 우연히 다시 이곳 이르니
佛前依舊一燈靑 불전의구일등청 불전엔 그때처럼 등불 하나 푸르구나
어느스님의이야기
-검승전 -
신 광 수
임진왜란을 겪은 지 50여 년이 지난 어느 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대산 의절에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절에는 연세가 여든이나 되신 늙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얼굴
은 깡말랐으며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해 보면 매우함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글 읽는 소리 듣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글을 읽을 때면 곁에
앉아 글 읽는 소리를 듣곤 하였습니다.
스님은 매일 밤마다 그의 방으로 건너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그의방으로 건너온스님은,
“소승이 오늘 밤엔 돌아가신 스승의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결에서
모시질 못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날 밤이 깊어 법당 안에선 슬피 울고 있는 스님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새벽이 되도록 그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의 방을 찾아 주었습니다. 스님의 얼
굴에는 지난밤에 슬피 울었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는이상스럽게여기며스님에게물었습니다.
“저는 절에선 제사는 지내도 울지 않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사께
서는 어젯밤에 매우 슬피 우셨는데 무슨 까닭이 있으신가요? 대사의 울
음 속에는 마치 숨은 아픔이 있는 것같았습니다.”
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고쳐 앉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소승은 본디 조선 사람이 아니고 일본 사람 이랍니다.
소승이 조선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한창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승은 일본의 장수 카토오 키요마사에게 뽑혀 조선으로 왔습니다.
카토오 키요마사는 조선으로 쳐들어 올 때 칼 잘 쓰는 병사 3천 명을 골
라 뽑아 특별 부대를 만들어 앞장을 세웠습니다.
카토오키요마사는특별부대를 만들기 위하여칼잘쓰는 병사로
나이20세 이하 5만 명을 고르고 그 가운데에서 다시 3만 명을 골랐
습니다.
그리고 3만 명 가운데에서 1만 명을 고르고 그 가운데에서 다시 3천
명을 골라 특별부대를 만들었던 것 입니다.
특별부대에 뽑힌 일본 병사들은 매우 날랬습니다. 1백 보를 단숨에
날아 사람을 베기도 하였으며 공중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곤 하였습니
다.
소승도 그 가운데의 한 사람 이였습니다. 일본군의 앞장에 서서 조선
을 쳐들어온 특별부대는 쉬지 않고 공격해 올라갔습니다.
바닷가 아흡 고을을 거쳐 북으로 평안도를 짓밟고 함경도까지 공격
해 올라갔습니다.
특별부대는 어느 바닷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닷가의 언덕에는 높
이가 백여 길이나 되는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바위 위에는 웬 사람 하나가 도롱이를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를
발견한 특별부대는 고함을 치며 총을 쏘았습니다.
그러자 바위 위의 그 사람은 칼을 빼어 휘둘렀습니다. 그의 검술은
놀라왔습니다. 그는 칼을 휘둘러 총알을 막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특별부대 병사들은 그 바위를 에워쌌습니다. 그러자 바위 위
의 그는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더니마치 새처럼 날아 내려오며 칼을
휘둘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그가 칼을 휘두르자 특별부대 병사들은 픽
픽 고꾸라졌습니다. 그는 풀을 베듯 일본 병사들을 베어 버렸습니다.
3천 명 가운데에서 오직 죽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소승과 또한 사람
이 있었을 뿐입니다.
“너희 3천 명 가운데 죽지 않은 사람은 너희 둘뿐이다. 너희들이 비록
우리나라를 침범한 오랑캐이나 역시사람인만큼 모두 죽일 수가 없어 살
려 둔 것이다. 그러니 내 명령에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는 우리를 향해 호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승과 또 한 사람은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예에,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예에, 무슨 명령을 내리셔도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승과 또 한 사람은그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 속에 머문 지 몇 해 만에 우리는 그의 신기한 검술을 모두 배웠습니다.
우리는 나라 안의 이름난 산을 두루찾아다니며, 검술을 익혔습니다. 달이
밝은 날이면 높은 산마루에 올라가 칼춤을 마음껏 추었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깨뜨리고 우뚝 선 소나무를 단칼에 베기도 하였답니다.
그는우리에게 신기한 검술을 모두 가르쳐 주었지만 끝내 이름은 카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승은 스승의 이름조차 모른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스승은 암자를 나서며 들메끈을 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옆에 있던 일본 병사가 칼을 뽑아 스승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그리고는 소승을 돌아보며
“저놈은 우리의 원수야. 오늘에서야 그원수를 갚았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원수를갚았으니,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자.”
소승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소승과 그놈은 같은 일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스승을 함께 섬기면서도 그가 밤낮으로 그런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스승의 원수를 갚고 난 소승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스승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형제처럼 지내던 우리 세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동안에 스승을 잃고 형제처럼 지내던 그를 죽이고 나니 이 넓은 세상에 소승 혼자 남게 됐던 것이죠.
일본은 바다가 막고 있으니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에서 혼자 살자니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나는 일본 사람이니까 동해에 빠져 죽는 것이 좋겠다.’ 소승은 이렇게
마음을 먹고 동해로 나아가 바닷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다에서는 커다란 물고기가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소승의 몸은 파도에 밀려 바닷가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소승은 다시바닷물에 뛰어들지 못하고 오대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습니다.
소승이 오대산에 들어와 중이 되고 솔잎을 먹고 지낸 지 40년이나 되었습니다. 소승은 그 동안 한 번도 이 산을 내려간 일이 없답니다.
소승은 이 산에서 지내며 해마다 스승께서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슬피 울곤하였습니다. 소송의 올해 나이가 여든이나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것입니다. 소승이 죽고 난 다음에는 스승의 돌아가신날을 맞아 다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할 소승이 어젯밤에 운 것은 그런 까닭 때문이었습니다.
소승이 이 곳에서 늙었으나 같이 살고 는 중들도 제가 일본 사람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당신에게 제 평생의 자취를 드러내게 되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이야기를 끝내자 또 한바탕 매우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날이 밝자 그 스님은 어디론가 떠나 버고 없었습니다.
-<석북문집에서>-
화가 최북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신광수
서울에 사는 화가 최북은 그림을 팔아서 살아가는데,
지내는 곳 쓰러진 초가집에는 네 벽에서 찬 바람이 나는구나.
나무로 된 필통에다 유리로 된 안경을 쓰고,
문 닫은 채 하루 내내 산수도만 그린다네.
아침에 한 폭을 팔아선 아침 끼니를 얻고,
저녁에 한 폭을 팔아선 저녁거리를 얻는다네.
추운 겨울날 떨어진 방석 위에 손님을 앉혀 놓았는데
문 밖 조그만 다리 위에는 눈이 세 치나 쌓였구나.
여보게! 내가 올 적에 눈 덮인 강이나 그려서 주오.
두미와 월계에 다리 저는 나귀를 타고서,
환하게 물든 청산을 둘레둘레 돌아다보네.
고기 잡는 어부의 집은 눈에 눌리고 낚싯배만 외롭게 떴는데,
어찌 반드시 패릉교의 맹호연과 고산의 임포만 그릴 건가.
내 그대와 더불어 복사꽃 물 위에서 함께 배를 타리니,
설화지 위에다 봄날의 산 모습도 다시금 그려 주게나.
(석북 신광수가 호생관 최북의 실강도에 붙여 쓴 시. <화인열전2> 최북편에서)
미륵당에서 자며[宿彌勒堂]‘
天寒宿古店 천한숙고점 추운 날에 옛 주막에 묵고 있네
歸客夜心孤 귀객야심고 돌아가는 손 밤마다 마음이 외로워
滅燭窓明雪 멸촉창명설 등불을 꺼도 창밖의 눈빛이 밝아
燃茶枕近爐 연다침근로 베갯머리 화로에서는 찻물이 끓고
深更知력馬 심경지력마 깊은 밤 마굿간의 말발굽 소리
細事問鄕奴 세사문향노 향노에게 세세한 시골 안부 묻다가
月落鷄鳴後 월락계명후 달 지고 새벽닭 울고 난 후에
悠悠又上途 유유우상도 또 유유히 먼 길을 떠나야 하네.
찬 날씨에 옛 주막서 묵어 자려니 (天寒宿古店)
나그네 밤중 마음 더욱 외롭다. (歸客夜心孤)
촛불 꺼도 창밖은 눈 빛 환하고 (滅燭窓明雪)
머리맡 화로에선 차 끓는 소리. (燃茶枕近爐)
마구간 말굽 소리 밤 깊음 알고 (深更知력馬)
세상 일은 하인에게 물어 듣노라 (細事聞鄕奴)
달 지고 첫닭이 소리쳐 운 뒤 (月落鷄鳴後)
유유히 다시금 길에 오른다 (悠悠又上途)
登岳陽樓歎關山戎馬 등악양루탄관산융마 戎 되융, 오랑케, 되
(악양루에 올라 관산융마를 탄식하다)-신광수(申光洙)
秋江寂寞魚龍冷(추강적막어룡냉) : 가을 강은 적막하고 물고기는 찬데
人在西風仲宣樓(인재서풍중선루) : 사람은 찬 바람 부는 중선루에 있노라.
梅花萬國聽暮笛(매화만국청모적) : 천지에 매화꽃 피고 저물녘에 피리소리
桃竹殘年隨白鷗(도죽잔년수백구) : 도죽 지팡이에 의지한 늙은이 백구를 따르노라.
烏蠻落照倚檻恨(오만낙조의함한) : 해지는 저녁, 오만의 땅에서 난간에 기대니
直北兵塵何日休(직북병진하일휴) : 북녘 전쟁은 어느 때나 그칠런가.
春花故國濺淚後(춘화고국천루후) : 고향의 봄꽃에 눈물 흘리며 떠난 뒤
何處江山非我愁(하처강산비아수) : 어느 곳 강과 산이 나의 근심 아니리오.
新蒲細柳曲江苑(신포세류곡강원) : 새 부들, 가는 버들 늘어선 곡강의 동산
玉露靑楓夔子州(옥로청풍기자주) : 옥 이슬, 푸른 단풍 기자의 고을이라.
靑袍一上萬里船(청포일상만리선) : 선비로 한번 만 리 뱃길에 오르니
洞庭如天波始秋(동정여천파시추) : 하늘 같은 동정호, 물결이 가을을 알린다.
無邊楚色七百里(무변초색칠백리) : 끝없는 초나라 경물 칠백 리
自古高樓湖上浮(자고고루호상부) : 예부터 높은 누각 호수 위에 떠있었다.
秋聲徙倚落木天(추성사의낙목천) : 가을소리는 낙엽 지는 가을에 옮아와 기대어
眼力初窮靑草洲(안력초궁청초주) : 푸른 풀 가득한 섬을 끝없이 바라보노라.
風煙非不滿目來(풍연비불만목래) : 바람과 안개 눈에 가득 한없이 부는데
不幸東南飄泊遊(불행동남표박유) : 불행히도 나는 동남으로 떠도는구나.
中原幾處戰鼓多(중원기처전고다) : 중원 땅에는 몇 곳이나 전쟁이 잦은가
臣甫先爲天下憂(신보선위천하우) : 신하인 두보는 남 먼저 세상 위해 근심하였어라.
靑山白水寡婦哭(청산백수과부곡) : 푸른 산, 깨끗한 물가에서 과부는 울었고
苜蓿葡萄胡馬啾(목숙포도호마추) : 거여목과 포도 우거진 곳에 오랑캐 말도 울었다.
開元花鳥鎖繡嶺(개원화조쇄수령) : 개원연간의 꽃과 새들은 수령궁에 갇혀서
泣聽江南紅荳謳(읍청강남홍두구) : 눈물을 흘리며 강남의 붉은 콩 노래를 들었어라.
西垣梧竹舊拾遺(서원오죽구습유) : 서원의 오동나무와 대나무는 옛 두보의 것이리니
楚戶霜砧餘白頭(초호상침여백두) : 초나라 민가의 서리 낀 다듬이 소리에 백발만 남았구나.
蕭蕭孤棹犯百蠻(소소고도범백만) : 쓸쓸하고 외로운 배가 백만 지역으로 들어가니
百年生淮三峽舟(백년생회삼협주) : 백년 인생이 삼협을 지나는 배와 같구나.
風塵弟妹淚欲枯(풍진제매루욕고) : 풍진 속에 오누이들 눈물이 마르려고 하고
湖海親明書不投(호해친명서불투) : 호수와 바닷가 친구들 소식마저 전하지 못하는구나.
如萍天地此樓高(여평천지차루고) : 떠도는 부들 같은 세상, 이 높은 누각
亂代登臨悲楚囚(난대등림비초수) : 어지러운 시대에 올라보니 초나라 죄수가 슬러진다.
西京萬事奕棋場(서경만사혁기장) : 서경의 온갖 일들이 한 바탕 장지판
北望黃屋平安不(북망황옥평안부) : 북으로 임금님의 안부가 어떠한지 알고 싶도다.
巴陵春酒不成醉(파릉춘주불성취) : 파릉의 봄술에 취하지 못하여
金囊無心風物收(금낭무심풍물수) : 비단 주머니에 풍물 읊은 시 담을 마음이 없어진다.
朝宗江漢此何地(조종강한차하지) : 조종강한, 이것들이 어떠한 땅인가
等閒瀟湘樓下流(등한소상루하류) : 한가하게 소상의 강물은 누대 아래로 흘러간다.
蛟龍在水虎在山(교룡재수호재산) : 교룡은 물에 있고, 범은 산에 있나니
靑瑣朝班年幾周(청쇄조반년기주) : 궁궐에서 조회하던 일이 몇 년이나 지났는가.
君山元氣莾蒼邊(군산원기망창변) : 차고도 아득한 둘레 군산의 원기가 서려있고
一簾斜陽不滿鉤(일렴사양불만구) : 한 발 지는 해는 낚싯배를 채우지 못하는구나.
三聲楚猿喚愁生(삼성초원환수생) : 세 마디 초나라 원숭이 울음소리가 근심을 불러와
眼穿京華倚斗牛(안천경화의두우) : 두성과 우성에 기대어 서울을 눈이 뚫어지게 바라본다
霜曉開門晝角聲(상효개문주각성)
出看高月滿江城(출관고월만강성)
首陽山色猶殘雪(수양산색유잔설)
前路露蒼茫信馬行(전로창망신마행)
〈전주 남문루(全州南門樓)〉에서
성을 끼고 선 느티와 버들에 보슬비 내리고,
성 위 높다란 누각으로 제비가 날아든다.
來城槐柳雨微微
城上高樓燕子飛
시조는 초·중·종장의 사설을 3장 형식에 얹고 한 장단이 5박 또는 8박으로 되어 있는 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로 유래와 관련된 문헌은 17세기 중엽에 나온 『백운암금보』와 『어은보』 또는 18세기 중엽 신광수의 『석북집』을 들 수 있다. 이세춘이 활약하던 18세기 중엽에는 시조를 시절가 또는 시절단가(詩節短歌)라고 불리었다.
당시 가객 이세춘는 같은 정가(正歌)로 엄숙한 우조와 애원한 계면조가 있는 반면 화평한 평조가 없어 이를 애석하게 여김으로 새로 작곡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평시조라 추정하기도 한다. 또 3장형식의 시조는 이세춘이 노래하는 모습을 시로 읊은 신광수『석북집』 5권의 시귀 해석에 따라 그 차이는 있는데, 이미 18세기 중엽에는 시조의 음악형식이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현행 평시조에 해당하는 곡이 양금반주로 연주되기도 했을 것이며 19세기에는 평시조에서 파생, 변주되어 지름시조·사설시조가 불러졌고, 19세기 후반에는 경제·향제 등으로 퍼져 지역별 특징이 생기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도소리 西道소리
지정번호: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지정연월일:1969년9월27일
보유자: 오복녀(吳福女, 作故),이은관(李殷官)
전승지:서울특별시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 즉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잡가 등 관서(關西) 지방의 소리를 가리킨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지방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 하기로 이름이 있었고 기밀경을 지어서 잘 불렀다 한다. 그 뒤 평안도 용강 소리꾼 김관준(金寬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이 나서 일제때 까지 크게 불리웠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 받았고, 그 뒤 김정연(金正淵,작고), 오복녀(吳福女,작고), 이은관(李殷官)으로 이어오고 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된 잡가(雜歌), 한시(漢詩)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눌 수 있다. 민요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로 갈라진다.
평안도 민요로는 수심가(愁心歌)·엮은수심가·긴아리·잦은아리·안주애원성(安州哀怨聲) 등이있으며, 황해도 민요로는 긴난봉가·잦은난봉가·병신난봉가·사설난봉가·산염불(山念佛)·자진염불·몽금포타령 등이 있다. 또 서도잡가로는 공명가(孔明歌)·사설공명가·초한가(楚漢歌)·제전(祭奠)·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등이 있으며, 시창(詩唱)과 비슷한 관산융마(關山戎馬), 배뱅이굿도 여기에 속하며, 공명가는 판소리 적벽가(赤壁歌) 중 제갈공명이 남병산(南屛山)에서 동남풍을 비는 대목의 사설을 서도소리 가락에 얹은 것이고, 산염불은 무가(巫歌)의 염불요(念佛謠)가 속요화(俗謠化)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수심가는 비교적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전체 서도소리의 척도가 된다. 이 소리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무렵에 성천(成川)의 명기(名妓) 부용(芙蓉)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조선초기부터 이 지방 사람들에게 벼슬길을 막아버리자 그 설움의 푸념으로 읊어진 넋두리였는지도 모른다. 관산융마는 영조 때 신광수(申光洙)의 공령시(功令詩)를 율조(律調)에 올려 부르는 소리로 서도 시창(詩唱)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읊은 사람은 평양 기생 모란(牡丹)으로 전하고 있으며, 그 성조(聲調)가 처량하고 우아하여 많은 기생들이 모창(倣唱)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도 본바닥 창곡가(唱曲家)가 아니면 그 진수를 꿰뚫지 못했던 것이다.
추풍감별곡은 작자 미상의 회장소설(回章小說) 추봉감별곡(秋鳳感別曲)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조(唱調)는 가사나 긴잡가처럼 고르게 다듬어진 장단과 변화성 있는 선율은 없으며, 구성지게 읊는 규방가사(閨房歌辭)의 성조(聲調)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도조의 처량함과 우아함을 겸유한 목소리가 아니면 부르기 어려운 소리이다. 그밖에 긴아리와 자진아리는 평안도 용강과 관서지방의 구전민요로서 토속적인 소박한 맛이 간직된 소리이다. 안주애원성은 평안도 안주지방에서 베를 짜기 위하여 실을 잦던 아낙네들이 부르던 노래라고 하는데, 함경도 민요 애원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주애원성이라 했다 하며, 부녀자들의 고달픈 생활에 대한 애환이 가사 속에 들어있어 밝은 내용의 소리는 아니지만 가락이나 장단면에서는 수심가나 긴아리보다도 오히려 경쾌한 맛을 보여 준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면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고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소리들을 느릿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騎牛暮至(기우모지)
-소를 타고 황혼에 도착하다
石北 申光洙(석북 신광수 1712~1775)
黃昏江上待君來(황혼강상대군래)
날 저문 강변에서 그대 오기 기다렸네
牛背君來笑一開(우배군래소일개)
소를 타고 오며 그대 씩 하고 한 번 웃네
江月已高三丈外(강월이고삼장외)
강 위로 달은 높이 떠 중천인데
雪中催上寺東臺(설중최상사동대)
쌓인 눈 헤치고 동대로 어서 오르세
신광수는 젊은 시절 초시에 합격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60살이 넘어 영릉 능참봉 벼슬을 제수 받았다. 그 당시 여주에 머물고 있을 때 지은 시다.
오기로 약속한 친구가 늦어져서 해가 질 무렵에야 도착했다. 소 등에 올라앉은 그 친구는 늦은 게 미안한 듯 씩 하며 한 번 웃고 만다. 강 위로 이미 달은 높이 떠올랐다. 신륵사 옆 동대라는 누각에 주안상을 준비하여 놓았다. 늦었지만 다행이도 달은 밝으니 눈을 헤치고 올라가 시도 읊고 강 위에 뜬 달도 보면서 吟風弄月로 회포를 나눠 보자고 권하고 있다.
*已(이):이미
東臺(동대)
石北 申光洙(석북 신광수 1712~1775)
東臺月出對丁生(동대월출대정생)
달 떠오른 동대에서 자네와 마주 앉았으니
雪後空江更覺明(설후공강갱각명)
눈 그친 빈 강이 더욱 환해지네
正憶去年今夜客(정억거년금야객)
작년 일이 생각나오 바로 오늘같은 밤
黃昏獨上海州城(황혼독상해주성)
해 저물녘 해주성에 나 홀로 올랐었지
지난 주 소개한 시에 나온 소를 타고 늦게 온 친구가 정생이다. 눈을 헤치고 동대에 올라가 즉석에서 지은 시다. 이렇게 시를 주고받는 게 옛 사람 들의 풍류였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그대와 마주 앉았다고 서두를 꺼낸 뒤, 아무도 없는 강가에 쌓인 눈 위로 달빛이 비치어 더욱 환하다고 주변 경치를 묘사했다. 그리고 후반 두 구절에서 1 년 전을 회상한다. 벼슬 없던 白手 시절, 친구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해주성에 홀로 올랐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이 자리가 작년에 비해 그지없이 행복하다는 표현이다
기패기송낭(寄浿妓松娘)/신광수(申光洙)
평양 기생 송랑에게
巫山曾不作因緣(무산증불작인연)
일찍이 무산의 인연일랑 미처 못 맺고
別後前遊細可憐(별후전유세가연)
이별한 후 전의 놀던 일 너무 아쉬워라
綺席偸分藏果篋(기석투분장과협)
잠자리에서 다투던 일, 과일 상자에 넣고
紅裙笑蕩採菱船(홍군소탕채릉선)
다홍치마 입고서 마름 캐는 배에서 활짝 웃던 너
關河楚國今千里(관하초국금천리)
우리 놀던 관서의 물가, 이제는 천리 머나먼 땅
煙月楊州又一年(연월양주우일년)
태평한 양주에서 또 일년이 지나가네
浮碧練光歌舞地(부벽련광가무지)
부벽루 연광정은 가무의 고장
玉人能憶舊詩仙(옥인능억구시선)
그대는 지금도 기억할거야 그 옛날 시 잘 짓던 이를
도가의 경의에 관한 설-신광수(申光洙)
修養家(수양가) : 수양가(修養家)들은
不過自私之小道(불과자사지소도) : 자기만 위한 작은 도(道)에 지나지 않으므로
非若佛之洸洋自恣(비약불지광양자자) : 부처처럼 끝없고 가없이 의논을 마구 펴
滅絶倫紀也(멸절륜기야) : 인륜(人倫)을 끊어 없애는 것과는 같지 않다.
然其爲書(연기위서) : 그러나 그 글들이
率多隱語(솔다은어) : 대부분 본 뜻을 바로 나타내지 않고 다른 말을 빌려다 암시(暗示)한 말들이므로
爲之者不能考究其眞(위지자불능고구기진) : 수양을 하려는 자가 그 참뜻을 상고하지 못하여
遂馳心域外(수치심역외) : 드디어는 그 테두리 밖으로 마음을 치달리다
而爭趨於荒唐(이쟁추황당) : 황당한 데로 앞을 다투어 나아가고 만다.
今據其實(금거기실) : 지금 그 본뜻을 근거해 본다.
則昆侖(칙곤륜) : 곤륜(崑崙)은
頭也(두야) : 머리이고
又爲臍也(우위제야) : 배꼽이라고도 하며,
丹田有三(단전유삼) : 단전(丹田)은 세 가지가 있는데
腦爲上丹田(뇌위상단전) : 뇌(腦)가 상단전이고,
心下爲中丹田(심하위중단전) : 심장이 중단전이고
臍下爲下丹田也(제하위하단전야) : 배꼽이 하단전이다.
泥丸(니환) : 이환(泥丸)은
腦也(뇌야) : 뇌이고,
天庭(천정) : 천정(天庭)은
兩眉間也(양미간야) : 두 눈썹 사이이고,
蒼華太元華根雲儀玉華(창화태원화근운의옥화) : 창화(蒼華)ㆍ태원(太元)ㆍ화근(華根)ㆍ운의(雲儀)ㆍ옥화(玉華)는
皆髮名(개발명) : 모두 머리털 이름이고,
天臺中岳神廬長谷玉隴靈堅(천대중악신려장곡옥롱령견) : 천대(天臺)ㆍ중악(中岳)ㆍ신려(神廬)ㆍ장곡(長谷)ㆍ옥롱(玉隴)ㆍ영견(靈堅)은
皆鼻名也(개비명야) : 모두 코의 이름이고,
銀海明珠(은해명주) : 은해(銀海)ㆍ명주(明珠)는
皆目名也(개목명야) : 모두 눈의 이름이고,
英玄明上(영현명상) : 영현(英玄)ㆍ명상(明上)은
皆目神名也(개목신명야) : 모두 눈을 맡은 신(神)의 이름이고,
華蓋(화개) : 화개(華蓋)는
眉也(미야) : 눈썹이다.
空間矯女(공간교녀) : 공간(空間)ㆍ교녀(矯女)는
皆耳神名也(개이신명야) : 모두 귀를 맡은 신의 이름이고,
幽田亦耳神也(유전역이신야) : 유전(幽田)도 귀를 맡은 신의 이름이다.
紫煙素雲(자연소운) : 자연(紫煙)ㆍ소운(素雲)은
皆目精也(개목정야) : 다 눈동자이고,
大淵金醴玉英玉池醴泉(대연금례옥영옥지례천) : 대연(大淵)ㆍ금례(金醴)ㆍ옥영(玉英)ㆍ옥지(玉池)ㆍ예천(醴泉)은
皆口液也(개구액야) : 모두 진액이고,
靈根朱鳥(령근주조) : 영근(靈根)ㆍ주조(朱鳥)는
皆舌名也(개설명야) : 모두 혀의 이름이고,
通命(통명) : 통명(通命)은
舌神名也(설신명야) : 혀를 맡은 신의 이름이고,
正倫亦舌神也(정륜역설신야) : 정륜(正倫)도 혀를 맡은 신의 이름이고,
玄膺(현응) : 현응(玄膺)은 혀
舌下通津處也(설하통진처야) : 밑으로 진액이 통하는 곳이고,
崿峯白石羅千(악봉백석라천) : 악봉(崿峯)ㆍ백석(白石)ㆍ나천(羅千)은
皆齒也(개치야) : 모두 이빨의 이름이고,
中池(중지) : 중지(中池)는
口名也(구명야) : 입의 이름이고,
玉樓(옥루) : 옥루(玉樓)는
肩名也(견명야) : 어깨의 이름이다.
靈臺紫房絳宮赤城守靈丹元(령대자방강궁적성수령단원) : 영대(靈薹)ㆍ자방(紫房)ㆍ강궁(絳宮)ㆍ적성(赤城)ㆍ수령(守靈)ㆍ단원(丹元)은
皆心名也(개심명야) : 모두 심장의 이름이고,
龍煙含明(룡연함명) : 용연(龍煙)ㆍ함명(含明)은
皆肝名也(개간명야) : 모두 간장의 이름이고,
黃野常在魂停靈元(황야상재혼정령원) : 황야(黃野)ㆍ상재(常在)ㆍ혼정(魂停)ㆍ영원(靈元)은
皆脾名也(개비명야) : 모두 비장의 이름이고,
虛成皓華混康(허성호화혼강) : 허성(虛成)ㆍ호화(皓華)ㆍ혼강(混康)은
皆肺名也(개폐명야) : 모두 폐장의 이름이고,
威明龍曜(위명룡요) : 위명(威明)ㆍ용요(龍曜)는
皆膽名也(개담명야) : 모두 담(膽)의 이름이고,
太倉(태창) : 태창(太倉)은
胃名也(위명야) : 위장의 이름이고,
玄冥育嬰玄卿(현명육영현경) : 현명(玄冥)ㆍ육영(育嬰)ㆍ현경(玄卿)은
皆腎名也(개신명야) : 모두 신장의 이름이다.
幽關(유관) : 유관(幽關)은
兩腎間也(량신간야) : 두 신장의 사이이고,
隱龍(은룡) : 은룡(隱龍)은
肝膽也(간담야) : 간과 담이고,
長城(장성) : 장성(長城)은
小腸也(소장야) : 소장이고,
重樓(중루) : 중루(重樓)는
喉嚨也(후롱야) : 목구멍이고,
素瓊(소경) : 소경(素瓊)은
口津也(구진야) : 침이고,
三焦(삼초) : 삼초(三焦)는
心肝肺上氣也(심간폐상기야) : 심장ㆍ간장ㆍ폐장의 기운이고,
內芝(내지) : 내지(內芝)는
脈也(맥야) : 맥(胍)이고,
神華(신화) : 신화(神華)는
脾肺之間也(비폐지간야) : 비장ㆍ폐장의 사이이다.
桃康(도강) : 도강(桃康)은
精也(정야) : 정(精)이고,
黃庭(황정) : 황정(黃庭)은
五贓之中(오장지중) : 오장 가운데
通人氣脈之所也(통인기맥지소야) : 기맥(氣脈)이 유통하는 곳이고,
黃童(황동) : 황동(黃童)은
黃庭之氣也(황정지기야) : 황정의 기운이고,
黃婆(황파) : 황파(黃婆)는
胎息也(태식야) : 태식(胎息)이다.
四海(사해) : 사해(四海)는,
心爲血海(심위혈해) : 심장이 혈해(血海)이고,
腎爲氣海(신위기해) : 신장이 기해(氣海)이고,
腦爲髓海(뇌위수해) : 뇌가 수해(髓海)이고,
脾胃爲水穀海也(비위위수곡해야) : 비장ㆍ위장이 수곡해(水穀海)이다.
五湖(오호) : 오호(五湖)는
五贓之液也(오장지액야) : 오장의 진액이고,
九江(구강) : 구강(九江)은
小腸之氣也(소장지기야) : 소장의 기운이고,
三島(삼도) : 삼도(三島)는
頂心神也(정심신야) : 이마ㆍ심장ㆍ정신이고,
六池(륙지) : 육지(六池)는
五贓及脣齒間也(오장급순치간야) : 오장 및 입술ㆍ이빨의 사이이고,
神水金波(신수금파) : 신수(神水)ㆍ금파(金波)는
皆津液也(개진액야) : 모두 진액이고,
瓊液玉泉白雪陽酥(경액옥천백설양소) : 경액(瓊液)ㆍ옥천(玉泉)ㆍ백설(白雪)ㆍ양수(陽酥)는
皆精也(개정야) : 모두 정(精)이다.
三池(삼지) : 삼지(三池)는
膽舌小腸也(담설소장야) : 쓸개ㆍ혀ㆍ소장이고,
三房(삼방) : 삼방(三房)은
丹田之別名也(단전지별명야) : 단전의 이칭이고,
三宮(삼궁) : 삼궁(三宮)은
丹田中也(단전중야) : 단전의 가운데이고,
九室(구실) : 구실(九室)은
頭也(두야) : 머리이고,
五芽(오아) : 오아(五芽)는
五行也(오행야) : 오행(五行)이고,
三神(삼신) : 삼신(三神)은
三丹田神也(삼단전신야) : 세 단전의 신(神)이고,
六丁六甲(륙정륙갑) : 육정 육갑(六丁六甲)은
丁干甲干也(정간갑간야) : 정간(丁干)과 갑간(甲干)이다.
三奇太淸丹田符籍也(삼기태청단전부적야) : 삼기(三奇)는 태청(太淸)ㆍ단전ㆍ부적(符籍)이고,
八景(팔경) : 팔경(八景)은
八卦也(팔괘야) : 팔괘(八卦)이고,
六神(륙신) : 육신(六神)은
六甲六丁六腑也(륙갑륙정륙부야) : 육갑(六甲)ㆍ육정(六丁)ㆍ육부(六府)이고,
三淸(삼청) : 삼청(三淸)은
太淸上淸玉淸也(태청상청옥청야) : 태청(太淸)ㆍ상청(上淸)ㆍ옥청(玉淸)이다.
三元(삼원) : 삼원(三元)은
精氣神也(정기신야) : 정(精)ㆍ기(氣)ㆍ신(神)이고,
玉宸君(옥신군) : 옥신군(玉宸君)은
太淸尊稱也(태청존칭야) : 태청을 높여서 부른 이름이고,
九神(구신) : 구신(九神)은
合三元三丹三房也(합삼원삼단삼방야) : 삼원(三元)ㆍ삼단(三丹)ㆍ삼방(三房)을 합한 것이고,
紫霞殿蕊珠殿(자하전예주전) : 자하전(紫霞殿)ㆍ예주전(蕊珠殿)은
皆寓言也(개우언야) : 비유한 말이고,
三光(삼광) : 삼광(三光)은
日月星也(일월성야) : 해ㆍ달ㆍ별이고,
五靈(오령) : 오령(五靈)은
五星也(오성야) : 오성(五星)이고,
桃核(도핵) : 도핵(桃核)은
太一君名也(태일군명야) : 태일군(太一君)의 이름이고,
鬱儀(울의) : 울의(鬱儀)는
日仙也(일선야) : 해의 신선이고,
結璘(결린) : 결린(結璘)은
月仙也(월선야) : 달의 신선이다.
五仙(오선) : 오선(五仙)은
天仙地仙人仙鬼仙神仙也(천선지선인선귀선신선야) : 천선(天仙)ㆍ지선(地仙)ㆍ인선(人仙)ㆍ귀선(鬼仙)ㆍ신선(神仙)이고,
八仙(팔선) : 팔선(八仙)은
鍾呂等八仙也(종려등팔선야) : 종려(鍾呂) 등 팔선이고,
三關(삼관) : 삼관(三關)은
口手足也(구수족야) : 입ㆍ손ㆍ발이고,
又臍下三寸爲關也(우제하삼촌위관야) : 또 배꼽 밑 세 치가 관이다.
三老(삼로) : 삼로(三老)는
元老玄老老君也(원로현로로군야) : 원로(元老)ㆍ현로(玄老)ㆍ노군(老君)이고,
三魂(삼혼) : 삼혼(三魂)은
魂之衍名也(혼지연명야) : 혼을 늘여서 부른 이름이고,
三眞(삼진) : 삼진(三眞)은
魂心脾也(혼심비야) : 혼ㆍ심장ㆍ비장이고,
九微(구미) : 구미(九微)는
猶九神也(유구신야) : 구신(九神)과 같은 것이고,
三蟲(삼충) : 삼충(三虫)은
三尸也(삼시야) : 삼시(三尸)이다.
四緣(사연) : 사연(四緣)은
身心世事也(신심세사야) : 몸ㆍ마음ㆍ세상ㆍ사물이고,
二藥(이약) : 이약(二藥)은
內也外也(내야외야) : 안과 밖이고,
上藥三品(상약삼품) : 상약삼품(上藥三品)은
精氣神也(정기신야) : 정(精)ㆍ기(氣)ㆍ신(神)이고,
三家(삼가) : 삼가(三家)는
身心意也(신심의야) : 몸ㆍ마음ㆍ뜻이고,
五氣(오기) : 오기(五氣)는
精神魂魄意也(정신혼백의야) : 정(精)ㆍ신(神)ㆍ혼(魂)ㆍ백(魄)ㆍ의(意)이다.
鉛汞(연홍) : 연홍(鉛汞)은
鉛腎汞心也(연신홍심야) : 심장과 신장을 단련한 것이고,
聖胎(성태) : 성태(聖胎)는
神凝氣結也(신응기결야) : 정신이 어리며 기운이 응결된 것이고,
脫胎(탈태) : 탈태(脫胎)는
丹成也(단성야) : 단전이 이루어진 것이고,
玄關(현관) : 현관(玄關)은
未發前氣也(미발전기야) : 드러나기 전의 기운이다.
嬰兒(영아) : 영아(嬰兒)는
猶聖胎也(유성태야) : 성태와 같고,
玄牝(현빈) : 현빈(玄牝)은
念慮所寄處也(념려소기처야) : 생각이 붙어 있는 곳이고,
鼎爐(정로) : 정로(鼎爐)는
身心也(신심야) : 몸과 마음이고,
七返(칠반) : 칠반(七返)은
七火之成數也(칠화지성수야) : 칠화(七火)의 성수(成數)이고,
九還(구환) : 구환(九還)은
九金之成數也(구금지성수야) : 구금(九金)의 성수이다.
身中夫婦(신중부부) : 신중부부(身中夫婦)는
性情也(성정야) : 성정(性情)이고,
眞種子心(진종자심) : 진종자심(眞種子心)은
頭也(두야) : 머리이고,
三要(삼요) : 삼요(三要)는
眼鼻腎(안비신) : 눈ㆍ코ㆍ신장이고,
或精氣神也(혹정기신야) : 혹은 정(精)ㆍ기(氣)ㆍ신(神)이라고도 한다.
玄龜(현구) : 현귀(玄龜)는
腎也(신야) : 신장이고,
朱雀(주작) : 주작(朱雀)은
心也(심야) : 심장이고,
五氣朝元也(오기조원야) : 오기조원(五氣朝元)은
精魂魄意不動也(정혼백의불동야) : 정(精)ㆍ혼(魂)ㆍ백(魄)ㆍ의(意)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木父金公(목부금공) : 목부금공(木父金公)은
指五臟之相爲母子也(지오장지상위모자야) : 오장이 서로 어미와 자식의 역할을 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沐浴(목욕) : 목욕(沐浴)은
洗心滌慮也(세심척려야) :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씻는 것이고,
養火(양화) : 양화(養火)는
絶念慮也(절념려야) : 생각을 끊는 것이고,
了當(료당) : 요당(了當)은
虛極也(허극야) : 매우 빈 것이고,
龍虎(룡호) : 용호(龍虎)는
心腎也(심신야) : 심장과 신장이고,
抽添(추첨) : 추첨(抽添)은
陰陽外降也(음양외강야) : 음양(陰陽)을 밖으로 내리는 것이고,
三劍(삼검) : 삼검(三劍)은
斬煩惱斬色欲斬貪嗔也(참번뇌참색욕참탐진야) : 번뇌와 색욕(色欲)과 탐진(貪嗔)을 베는 것이고,
八瓊丹(팔경단) : 팔경단(八瓊丹)은
丹砂雌黃空靑琉黃(단사자황공청류황) : 단사(丹砂)ㆍ자황(雌黃)ㆍ공청(空靑)ㆍ유황(琉黃)ㆍ
雲母戎鹽隱石雄黃也(운모융염은석웅황야) : 운모(雲母)ㆍ융염(戎鹽)ㆍ은석(隱石)ㆍ웅황(雄黃)이다.
十二科(십이과) : 십이과(十二科)는
皆修爲成道節目也(개수위성도절목야) : 모두 몸을 닦아 도(道)를 이룩하는 조목이고,
九難(구난) : 구난(九難)은
衣食逼迫(의식핍박) : 의식(衣食)에 핍박받는 것,
尊丈激惱(존장격뇌) : 어른이 분함을 돋우는 것,
名利縈絆(명리영반) : 명예와 이익이 얽어매는 것,
恩愛牽纏(은애견전) : 은혜와 사랑이 끌어당긴 것,
災禍橫生(재화횡생) : 재앙이 뜻밖에 닥치는 것,
盲師約束(맹사약속) : 맹사(盲師)와 약속하는 것,
議論差別(의론차별) : 의논의 차이가 나는 것,
志意懈怠(지의해태) : 뜻이 게을러지는 것,
歲月蹉跎也(세월차타야) :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고,
十魔(십마) : 십마(十魔)는
富貴情欲恩愛(부귀정욕은애) : 부(富)ㆍ귀(貴)ㆍ정(精)ㆍ욕(欲)ㆍ은(恩)ㆍ애(愛)ㆍ
患兵聲色也(환병성색야) : 환(患)ㆍ병(兵)ㆍ성(聲)ㆍ색(色)이다.
道在五氣五臟(도재오기오장) : 도는 오기(五氣)와 오장에 있는 것인데,
而求之於金石草木(이구지어금석초목) : 쇠ㆍ돌ㆍ풀ㆍ나무에서 찾고 있으니
秦皇漢武之倫是已(진황한무지륜시이) : 진 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漢武帝)와 같은 무리가 이러한 사람이다.
苟能生神生氣(구능생신생기) : 참으로 정신과 기운을 배양하여
淸明在躬(청명재궁) : 맑고 밝은 덕이 몸에 있게 한다면
則可以占人元之壽(칙가이점인원지수) : 사람이 원래 타고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니,
有志者不惑於妄誕則幾矣(유지자불혹어망탄칙기의) : 여기에 뜻이 있는 사람은 허튼 말에 현혹되지 않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광수 申光洙
1712(숙종 38) 서울~1775(영조 15) 경기 교하.
조선 영조 때의 문인.
궁핍과 빈곤 속에서 전국을 유람하며, 민중의 애환과 풍속을 시로 절실하게 노래했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오악산인(五嶽山人). 아버지 호(澔)와 어머니 성산이씨(星山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글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13세인 1724년 가세가 기울어 낙향했다.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1746년 한성시(漢城試)에서 〈관산융마 關山戎馬〉로 2등 급제했는데, 이 시는 당시에 널리 읊어졌으며 과시(科詩)의 모범이 되었다. 1750년 비로소 진사에 급제했으나, 이후로 다시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후 시골에서 칩거생활을 했으나, 갈수록 궁핍해져서 가산과 노복들을 청산하고 땅을 빌려 손수 농사를 지었다. 이때 몰락양반의 빈궁과 자신의 처지를 읊은 〈서관록 西關錄〉을 지었는데, 이 작품이 뒷날 역작인 〈관서악부〉를 짓는 계기가 되었다. 음보(蔭補)로 영릉참봉(寧陵參奉)에 임명되었고 이때 벗들과 여강에서 소일하며 〈여강록 驪江錄〉을 지었다. 악부체 시인 〈금마별가 金馬別歌〉도 이 시기에 지어졌다.
1763년 사옹봉사(司瓮奉事)가 되었고, 다음해에 금부도사로 제주에 가서 45일간 머물면서 제주민의 고충과 풍물을 노래한 〈탐라록 耽羅錄〉을 지었으며, 4월에는 선공봉사(繕工奉事)가 되었다. 1765년에 예빈직장(禮賓直長)이 되고 1767년에는 연천(連川) 현감이 되었다. 1772년 2월 어머니의 권유로 기로과(耆老科)에 응시하여 갑과(甲科) 1등으로 뽑혔다. 3월에 돈령도정(敦寧都正)이 되었는데, 영조가 궁핍한 사정을 알고 가옥과 노비를 하사했다. 다시 병조참의에 오르고 9월에 영월부사(寧越府使)에 임명되었다. 1774년 관서지방의 풍속·고적·고사 등을 소재로 한 〈관서악부 關西樂府〉를 지었다. 1775년 우승지에까지 올랐다. 저서인 〈석북집〉은 시인으로 일생을 보내면서 지은 많은 시가 실려 있는데, 특히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향토의 풍물에 대한 애착을 느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민중의 애환을 그린 뛰어난 작품집이다.
崍口所見 래구소견
申光洙 신광수 1712~1775
靑裙女出木花田 청군여출목화전 푸른 치마 입은 여자, 목화밭을 나와
見客回身立路邊 견객회신립로변 客을 보고, 몸을 돌려 길가에 서있네
白犬遠隨黃犬去 백견원수황견거 흰 개는 멀리, 누런 개 따라 가다가
雙還更走主人前 쌍환갱주주인전 짝 지어 다시, 다시 주인 앞으로 달려오네
投宿山寺 투숙산사 산사에 머물며
申光漢 신광한 1484~1555
少年常愛山家靜 소년상애산가정 젊은 날엔 산집의 고요함이 좋아서
多在禪窓讀古經 다재선창독고경 禪窓에서 옛 경전을 많이도 읽었었네
白髮偶然重到此 백발우연중도차 흰 머리로 우연히 다시 이곳 이르니
佛前依舊一燈靑 불전의구일등청 불전엔 그때처럼 등불 하나 푸르구나
어느스님의이야기
-검승전 -
신 광 수
임진왜란을 겪은 지 50여 년이 지난
어느 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대산
의 절에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절에는 연세가 여든이나 되신 늙
은 스님이 있였습니다. 스님의 얼굴
은 깡말랐으며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해 보면 매우
영리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글 읽는 소리 듣기를 좋아하셨습니
다. 그래서 그가 글을 읽을 때면 곁에
앉아 글 읽는 소리를 듣곤 하였습니다.
스님은 매일 밤마다 그의 방으로 건
너와 글 읽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그의방으로
건너온스님은,
“소승이 오늘 밤엔 돌아가신 스승의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결에서
모시질 못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날 밤이 깊어 법당 안에선 슬피
울고 있는 스님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새벽이 되도
록 그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
의 방을 찾아 주었습니다. 스님의 얼
굴에는 지난밤에 슬피 울었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는이상
스럽게여기며스님에게물었습니다.
“저는 절에선 제사는 지내도 울지 않
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사께
서는 어젯밤에 매우 슬피 우셨는데
무슨 까닭이 있으신가요? 대사의 울
음 속에는 마치 숨은 아픔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고쳐 앉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소승
은 본디 조선 사람이 아니고 일본 사
람 이랍니다.
소승이 조선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
터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한창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승은 일본의 장수 카토오 키요마
사에게 뽑혀 조선으로 왔습니다.
카토오 키요마사는 조선으로 쳐들어
올 때 칼 잘 쓰는 병사 3천 명을 골
라 뽑아 특별 부대를 만들어 앞장을
세웠습니다.
카토오키요마사는특별부대를
만들기 위하여칼잘쓰는 병사로
나이20세 이하 5만 명을 고르고
그 가운데에서 다시 3만 명을 골랐
습니다.
그리고 3만 명 가운데에서 1만 명
을 고르고 그 가운데에서 다시 3천
명을 골라 특별부대를 만들었던 것
입니다.
특별부대에 뽑힌 일본 병사들은
매우 날랬습니다. 1백 보를 단숨에
날아 사람을 베기도 하였으며 공중
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곤 하였습니
다.
소승도 그 가운데의 한 사람 이였
습니다. 일본군의 앞장에 서서 조선
을 쳐들어온 특별부대는 쉬지 않고
공격해 올라갔습니다.
바닷가 아흡 고을을 거쳐 북으로
평안도를 짓밟고 함경도까지 공격
해 올라갔습니다.
특별부대는 어느 바닷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닷가의 언덕에는 높
이가 백여 길이나 되는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바위 위에는 웬 사람 하나가 도
롱이를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를
발견한 특별부대는 고함을 치며 총
을 쏘았습니다.
그러자 바위 위의 그 사람은 칼을
빼어 휘둘렀습니다. 그의 검술은
놀라왔습니다. 그는 칼을 휘둘러
총알을 막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특별부대 병사들은 그 바
위를 에워쌌습니다. 그러자 바위 위
의 그는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마치 새처럼 날아 내려오며 칼을
휘둘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그가 칼
을 휘두르자 특별부대 병사들은 픽
픽 고꾸라졌습니다. 그는 풀을 베듯
일본 병사들을 베어 버렸습니다.
3천 명 가운데에서 오직 죽음을 당
하지 않은 사람은 소승과 또한 사람
이 있었을 뿐입니다.
“너희 3천 명 가운데 죽지 않은 사
람은 너희 둘뿐이다. 너희들이 비록
우리나라를 침범한 오랑캐이나 역시
사람인만큼 모두 죽일 수가 없어 살
려 둔 것이다. 그러니 내 명령에 순
순히 따르겠느냐?"
그는 우리를 향해 호령하는 것이었
습니다. 소승과 또 한 사람은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예에,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예에, 무슨 명령을 내리셔도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승과 또 한 사람은
그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 속에 머문 지 몇 해 만에 우리는
그의 신기한 검술을 모두 배웠습니다.
우리는 나라 안의 이름난 산을 두루
찾아다니며, 검술을 익혔습니다. 달이
밝은 날이면 높은 산마루에 올라가
칼춤을 마음껏 추었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깨뜨리고 우뚝 선 소나무를
단칼에 베기도 하였답니다.
그는우리에게신기한검술을모두
가르쳐주었지만 끝내 이름은 카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승은 스승
의 이름조차 모른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스승은 암자를 나서며 들메끈을 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옆에 있던 일
본 병사가 칼을 뽑아 스승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그리고는 소승을 돌아보며
“저놈은 우리의 원수야. 오늘에서야 그
원수를 갚았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
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렇게 말하였습
니다.
“원수를갚았으니, 이제 일본으로 돌아
가자.”
소승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
습니다. 그리고 곧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소승과 그놈은 같은 일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스승을 함께 섬기면서
도 그가 밤낮으로 그런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스승의 원수를 갚고 난 소승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스승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형제처럼 지내던 우
리 세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동안에 스승을 잃고 형제처럼 지
내던 그를 죽이고 나니 이 넓은 세상에
소승 혼자 남게 됐던 것이죠.
일본은 바다가 막고 있으니 돌아갈 수
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
에서 혼자 살자니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나는 일본 사람이니까 동해에 빠져 죽
는 것이 좋겠다.’ 소승은 이렇게 마음을
먹고 동해로 나아가 바닷물에 몸을 던
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다에서는 커다
란 물고기가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소승의몸은파도에밀려바
닷가로나오고말았습니다. 소송은 다시
바닷물에 뛰어들지 못하고 오대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습니다.
소승이 오대산에 들어와 중이 되고 솔
잎을 먹고 지낸 지 40년이나 되었습니
다. 소승은 그 동안 한 번도 이 산을 내
려간 일이 없답니다.
소승은 이 산에서 지내며 해마다 스승
께서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슬피 울곤
하였습니다. 소송의 올해 나이가 여든이
나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것입니다. 소승
이 죽고 난 다음에는 스승의 돌아가신
날을 맞아 다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할
소승이 어젯밤에 운 것은 그런 까닭 때
문이었습니다.
소승이 이 곳에서 늙었으나 같이 살고
있는 중들도 제가 일본 사람인 줄을 모
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당
신에게 제 평생의 자취를 드러내게 되
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이야기를 끝내자 또 한바탕 매
우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날이 밝자 그 스님은 어디론가 떠나 버
리고 없었습니다.
-<석북문집에서>-
화가 최북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신광수
서울에 사는 화가 최북은 그림을 팔아서 살아가는데,
지내는 곳 쓰러진 초가집에는 네 벽에서 찬 바람이 나는구나.
나무로 된 필통에다 유리로 된 안경을 쓰고,
문 닫은 채 하루 내내 산수도만 그린다네.
아침에 한 폭을 팔아선 아침 끼니를 얻고,
저녁에 한 폭을 팔아선 저녁거리를 얻는다네.
추운 겨울날 떨어진 방석 위에 손님을 앉혀 놓았는데
문 밖 조그만 다리 위에는 눈이 세 치나 쌓였구나.
여보게! 내가 올 적에 눈 덮인 강이나 그려서 주오.
두미와 월계에 다리 저는 나귀를 타고서,
환하게 물든 청산을 둘레둘레 돌아다보네.
고기 잡는 어부의 집은 눈에 눌리고 낚싯배만 외롭게 떴는데,
어찌 반드시 패릉교의 맹호연과 고산의 임포만 그릴 건가.
내 그대와 더불어 복사꽃 물 위에서 함께 배를 타리니,
설화지 위에다 봄날의 산 모습도 다시금 그려 주게나.
(석북 신광수가 호생관 최북의 실강도에 붙여 쓴 시. <화인열전2> 최북편에서)
미륵당에서 자며[宿彌勒堂]‘
天寒宿古店 천한숙고점 추운 날에 옛 주막에 묵고 있네
歸客夜心孤 귀객야심고 돌아가는 손 밤마다 마음이 외로워
滅燭窓明雪 멸촉창명설 등불을 꺼도 창밖의 눈빛이 밝아
燃茶枕近爐 연다침근로 베갯머리 화로에서는 찻물이 끓고
深更知력馬 심경지력마 깊은 밤 마굿간의 말발굽 소리
細事問鄕奴 세사문향노 향노에게 세세한 시골 안부 묻다가
月落鷄鳴後 월락계명후 달 지고 새벽닭 울고 난 후에
悠悠又上途 유유우상도 또 유유히 먼 길을 떠나야 하네.
찬 날씨에 옛 주막서 묵어 자려니 (天寒宿古店)
나그네 밤중 마음 더욱 외롭다. (歸客夜心孤)
촛불 꺼도 창밖은 눈 빛 환하고 (滅燭窓明雪)
머리맡 화로에선 차 끓는 소리. (燃茶枕近爐)
마구간 말굽 소리 밤 깊음 알고 (深更知력馬)
세상 일은 하인에게 물어 듣노라 (細事聞鄕奴)
달 지고 첫닭이 소리쳐 운 뒤 (月落鷄鳴後)
유유히 다시금 길에 오른다 (悠悠又上途)
登岳陽樓歎關山戎馬 등악양루탄관산융마 戎 되융, 오랑케, 되
(악양루에 올라 관산융마를 탄식하다)-신광수(申光洙)
秋江寂寞魚龍冷(추강적막어룡냉) : 가을 강은 적막하고 물고기는 찬데
人在西風仲宣樓(인재서풍중선루) : 사람은 찬 바람 부는 중선루에 있노라.
梅花萬國聽暮笛(매화만국청모적) : 천지에 매화꽃 피고 저물녘에 피리소리
桃竹殘年隨白鷗(도죽잔년수백구) : 도죽 지팡이에 의지한 늙은이 백구를 따르노라.
烏蠻落照倚檻恨(오만낙조의함한) : 해지는 저녁, 오만의 땅에서 난간에 기대니
直北兵塵何日休(직북병진하일휴) : 북녘 전쟁은 어느 때나 그칠런가.
春花故國濺淚後(춘화고국천루후) : 고향의 봄꽃에 눈물 흘리며 떠난 뒤
何處江山非我愁(하처강산비아수) : 어느 곳 강과 산이 나의 근심 아니리오.
新蒲細柳曲江苑(신포세류곡강원) : 새 부들, 가는 버들 늘어선 곡강의 동산
玉露靑楓夔子州(옥로청풍기자주) : 옥 이슬, 푸른 단풍 기자의 고을이라.
靑袍一上萬里船(청포일상만리선) : 선비로 한번 만 리 뱃길에 오르니
洞庭如天波始秋(동정여천파시추) : 하늘 같은 동정호, 물결이 가을을 알린다.
無邊楚色七百里(무변초색칠백리) : 끝없는 초나라 경물 칠백 리
自古高樓湖上浮(자고고루호상부) : 예부터 높은 누각 호수 위에 떠있었다.
秋聲徙倚落木天(추성사의낙목천) : 가을소리는 낙엽 지는 가을에 옮아와 기대어
眼力初窮靑草洲(안력초궁청초주) : 푸른 풀 가득한 섬을 끝없이 바라보노라.
風煙非不滿目來(풍연비불만목래) : 바람과 안개 눈에 가득 한없이 부는데
不幸東南飄泊遊(불행동남표박유) : 불행히도 나는 동남으로 떠도는구나.
中原幾處戰鼓多(중원기처전고다) : 중원 땅에는 몇 곳이나 전쟁이 잦은가
臣甫先爲天下憂(신보선위천하우) : 신하인 두보는 남 먼저 세상 위해 근심하였어라.
靑山白水寡婦哭(청산백수과부곡) : 푸른 산, 깨끗한 물가에서 과부는 울었고
苜蓿葡萄胡馬啾(목숙포도호마추) : 거여목과 포도 우거진 곳에 오랑캐 말도 울었다.
開元花鳥鎖繡嶺(개원화조쇄수령) : 개원연간의 꽃과 새들은 수령궁에 갇혀서
泣聽江南紅荳謳(읍청강남홍두구) : 눈물을 흘리며 강남의 붉은 콩 노래를 들었어라.
西垣梧竹舊拾遺(서원오죽구습유) : 서원의 오동나무와 대나무는 옛 두보의 것이리니
楚戶霜砧餘白頭(초호상침여백두) : 초나라 민가의 서리 낀 다듬이 소리에 백발만 남았구나.
蕭蕭孤棹犯百蠻(소소고도범백만) : 쓸쓸하고 외로운 배가 백만 지역으로 들어가니
百年生淮三峽舟(백년생회삼협주) : 백년 인생이 삼협을 지나는 배와 같구나.
風塵弟妹淚欲枯(풍진제매루욕고) : 풍진 속에 오누이들 눈물이 마르려고 하고
湖海親明書不投(호해친명서불투) : 호수와 바닷가 친구들 소식마저 전하지 못하는구나.
如萍天地此樓高(여평천지차루고) : 떠도는 부들 같은 세상, 이 높은 누각
亂代登臨悲楚囚(난대등림비초수) : 어지러운 시대에 올라보니 초나라 죄수가 슬러진다.
西京萬事奕棋場(서경만사혁기장) : 서경의 온갖 일들이 한 바탕 장지판
北望黃屋平安不(북망황옥평안부) : 북으로 임금님의 안부가 어떠한지 알고 싶도다.
巴陵春酒不成醉(파릉춘주불성취) : 파릉의 봄술에 취하지 못하여
金囊無心風物收(금낭무심풍물수) : 비단 주머니에 풍물 읊은 시 담을 마음이 없어진다.
朝宗江漢此何地(조종강한차하지) : 조종강한, 이것들이 어떠한 땅인가
等閒瀟湘樓下流(등한소상루하류) : 한가하게 소상의 강물은 누대 아래로 흘러간다.
蛟龍在水虎在山(교룡재수호재산) : 교룡은 물에 있고, 범은 산에 있나니
靑瑣朝班年幾周(청쇄조반년기주) : 궁궐에서 조회하던 일이 몇 년이나 지났는가.
君山元氣莾蒼邊(군산원기망창변) : 차고도 아득한 둘레 군산의 원기가 서려있고
一簾斜陽不滿鉤(일렴사양불만구) : 한 발 지는 해는 낚싯배를 채우지 못하는구나.
三聲楚猿喚愁生(삼성초원환수생) : 세 마디 초나라 원숭이 울음소리가 근심을 불러와
眼穿京華倚斗牛(안천경화의두우) : 두성과 우성에 기대어 서울을 눈이 뚫어지게 바라본다
霜曉開門晝角聲(상효개문주각성)
出看高月滿江城(출관고월만강성)
首陽山色猶殘雪(수양산색유잔설)
前路露蒼茫信馬行(전로창망신마행)
〈전주 남문루(全州南門樓)〉에서
성을 끼고 선 느티와 버들에 보슬비 내리고,
성 위 높다란 누각으로 제비가 날아든다.
來城槐柳雨微微
城上高樓燕子飛
시조는 초·중·종장의 사설을 3장 형식에 얹고 한 장단이 5박 또는 8박으로 되어 있는 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로 유래와 관련된 문헌은 17세기 중엽에 나온 『백운암금보』와 『어은보』 또는 18세기 중엽 신광수의 『석북집』을 들 수 있다. 이세춘이 활약하던 18세기 중엽에는 시조를 시절가 또는 시절단가(詩節短歌)라고 불리었다.
당시 가객 이세춘는 같은 정가(正歌)로 엄숙한 우조와 애원한 계면조가 있는 반면 화평한 평조가 없어 이를 애석하게 여김으로 새로 작곡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평시조라 추정하기도 한다. 또 3장형식의 시조는 이세춘이 노래하는 모습을 시로 읊은 신광수『석북집』 5권의 시귀 해석에 따라 그 차이는 있는데, 이미 18세기 중엽에는 시조의 음악형식이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현행 평시조에 해당하는 곡이 양금반주로 연주되기도 했을 것이며 19세기에는 평시조에서 파생, 변주되어 지름시조·사설시조가 불러졌고, 19세기 후반에는 경제·향제 등으로 퍼져 지역별 특징이 생기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도소리 西道소리
지정번호: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지정연월일:1969년9월27일
보유자: 오복녀(吳福女, 作故),이은관(李殷官)
전승지:서울특별시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 즉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잡가 등 관서(關西) 지방의 소리를 가리킨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지방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 하기로 이름이 있었고 기밀경을 지어서 잘 불렀다 한다. 그 뒤 평안도 용강 소리꾼 김관준(金寬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이 나서 일제때 까지 크게 불리웠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 받았고, 그 뒤 김정연(金正淵,작고), 오복녀(吳福女,작고), 이은관(李殷官)으로 이어오고 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된 잡가(雜歌), 한시(漢詩)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눌 수 있다. 민요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로 갈라진다.
평안도 민요로는 수심가(愁心歌)·엮은수심가·긴아리·잦은아리·안주애원성(安州哀怨聲) 등이있으며, 황해도 민요로는 긴난봉가·잦은난봉가·병신난봉가·사설난봉가·산염불(山念佛)·자진염불·몽금포타령 등이 있다. 또 서도잡가로는 공명가(孔明歌)·사설공명가·초한가(楚漢歌)·제전(祭奠)·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등이 있으며, 시창(詩唱)과 비슷한 관산융마(關山戎馬), 배뱅이굿도 여기에 속하며, 공명가는 판소리 적벽가(赤壁歌) 중 제갈공명이 남병산(南屛山)에서 동남풍을 비는 대목의 사설을 서도소리 가락에 얹은 것이고, 산염불은 무가(巫歌)의 염불요(念佛謠)가 속요화(俗謠化)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수심가는 비교적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전체 서도소리의 척도가 된다. 이 소리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무렵에 성천(成川)의 명기(名妓) 부용(芙蓉)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조선초기부터 이 지방 사람들에게 벼슬길을 막아버리자 그 설움의 푸념으로 읊어진 넋두리였는지도 모른다. 관산융마는 영조 때 신광수(申光洙)의 공령시(功令詩)를 율조(律調)에 올려 부르는 소리로 서도 시창(詩唱)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읊은 사람은 평양 기생 모란(牡丹)으로 전하고 있으며, 그 성조(聲調)가 처량하고 우아하여 많은 기생들이 모창(倣唱)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도 본바닥 창곡가(唱曲家)가 아니면 그 진수를 꿰뚫지 못했던 것이다.
騎牛暮至(기우모지)
-소를 타고 황혼에 도착하다
石北 申光洙(석북 신광수 1712~1775)
黃昏江上待君來(황혼강상대군래)
날 저문 강변에서 그대 오기 기다렸네
牛背君來笑一開(우배군래소일개)
소를 타고 오며 그대 씩 하고 한 번 웃네
江月已高三丈外(강월이고삼장외)
강 위로 달은 높이 떠 중천인데
雪中催上寺東臺(설중최상사동대)
쌓인 눈 헤치고 동대로 어서 오르세
신광수는 젊은 시절 초시에 합격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60살이 넘어 영릉 능참봉 벼슬을 제수 받았다. 그 당시 여주에 머물고 있을 때 지은 시다.
오기로 약속한 친구가 늦어져서 해가 질 무렵에야 도착했다. 소 등에 올라앉은 그 친구는 늦은 게 미안한 듯 씩 하며 한 번 웃고 만다. 강 위로 이미 달은 높이 떠올랐다. 신륵사 옆 동대라는 누각에 주안상을 준비하여 놓았다. 늦었지만 다행이도 달은 밝으니 눈을 헤치고 올라가 시도 읊고 강 위에 뜬 달도 보면서 吟風弄月로 회포를 나눠 보자고 권하고 있다.
*已(이):이미
東臺(동대)
石北 申光洙(석북 신광수 1712~1775)
東臺月出對丁生(동대월출대정생)
달 떠오른 동대에서 자네와 마주 앉았으니
雪後空江更覺明(설후공강갱각명)
눈 그친 빈 강이 더욱 환해지네
正憶去年今夜客(정억거년금야객)
작년 일이 생각나오 바로 오늘같은 밤
黃昏獨上海州城(황혼독상해주성)
해 저물녘 해주성에 나 홀로 올랐었지
지난 주 소개한 시에 나온 소를 타고 늦게 온 친구가 정생이다. 눈을 헤치고 동대에 올라가 즉석에서 지은 시다. 이렇게 시를 주고받는 게 옛 사람 들의 풍류였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그대와 마주 앉았다고 서두를 꺼낸 뒤, 아무도 없는 강가에 쌓인 눈 위로 달빛이 비치어 더욱 환하다고 주변 경치를 묘사했다. 그리고 후반 두 구절에서 1 년 전을 회상한다. 벼슬 없던 白手 시절, 친구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해주성에 홀로 올랐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이 자리가 작년에 비해 그지없이 행복하다는 표현이다
기패기송낭(寄浿妓松娘)/신광수(申光洙)
평양 기생 송랑에게
巫山曾不作因緣(무산증불작인연)
일찍이 무산의 인연일랑 미처 못 맺고
別後前遊細可憐(별후전유세가연)
이별한 후 전의 놀던 일 너무 아쉬워라
綺席偸分藏果篋(기석투분장과협)
잠자리에서 다투던 일, 과일 상자에 넣고
紅裙笑蕩採菱船(홍군소탕채릉선)
다홍치마 입고서 마름 캐는 배에서 활짝 웃던 너
關河楚國今千里(관하초국금천리)
우리 놀던 관서의 물가, 이제는 천리 머나먼 땅
煙月楊州又一年(연월양주우일년)
태평한 양주에서 또 일년이 지나가네
浮碧練光歌舞地(부벽련광가무지)
부벽루 연광정은 가무의 고장
玉人能憶舊詩仙(옥인능억구시선)
그대는 지금도 기억할거야 그 옛날 시 잘 짓던 이를
도가의 경의에 관한 설-신광수(申光洙)
修養家(수양가) : 수양가(修養家)들은
不過自私之小道(불과자사지소도) : 자기만 위한 작은 도(道)에 지나지 않으므로
非若佛之洸洋自恣(비약불지광양자자) : 부처처럼 끝없고 가없이 의논을 마구 펴
滅絶倫紀也(멸절륜기야) : 인륜(人倫)을 끊어 없애는 것과는 같지 않다.
然其爲書(연기위서) : 그러나 그 글들이
率多隱語(솔다은어) : 대부분 본 뜻을 바로 나타내지 않고 다른 말을 빌려다 암시(暗示)한 말들이므로
爲之者不能考究其眞(위지자불능고구기진) : 수양을 하려는 자가 그 참뜻을 상고하지 못하여
遂馳心域外(수치심역외) : 드디어는 그 테두리 밖으로 마음을 치달리다
而爭趨於荒唐(이쟁추어황당) : 황당한 데로 앞을 다투어 나아가고 만다.
今據其實(금거기실) : 지금 그 본뜻을 근거해 본다.
則昆侖(칙곤륜) : 곤륜(崑崙)은
頭也(두야) : 머리이고
又爲臍也(우위제야) : 배꼽이라고도 하며,
丹田有三(단전유삼) : 단전(丹田)은 세 가지가 있는데
腦爲上丹田(뇌위상단전) : 뇌(腦)가 상단전이고,
心下爲中丹田(심하위중단전) : 심장이 중단전이고
臍下爲下丹田也(제하위하단전야) : 배꼽이 하단전이다.
泥丸(니환) : 이환(泥丸)은
腦也(뇌야) : 뇌이고,
天庭(천정) : 천정(天庭)은
兩眉間也(양미간야) : 두 눈썹 사이이고,
蒼華太元華根雲儀玉華(창화태원화근운의옥화) : 창화(蒼華)ㆍ태원(太元)ㆍ화근(華根)ㆍ운의(雲儀)ㆍ옥화(玉華)는
皆髮名(개발명) : 모두 머리털 이름이고,
天臺中岳神廬長谷玉隴靈堅(천대중악신려장곡옥롱령견) : 천대(天臺)ㆍ중악(中岳)ㆍ신려(神廬)ㆍ장곡(長谷)ㆍ옥롱(玉隴)ㆍ영견(靈堅)은
皆鼻名也(개비명야) : 모두 코의 이름이고,
銀海明珠(은해명주) : 은해(銀海)ㆍ명주(明珠)는
皆目名也(개목명야) : 모두 눈의 이름이고,
英玄明上(영현명상) : 영현(英玄)ㆍ명상(明上)은
皆目神名也(개목신명야) : 모두 눈을 맡은 신(神)의 이름이고,
華蓋(화개) : 화개(華蓋)는
眉也(미야) : 눈썹이다.
空間矯女(공간교녀) : 공간(空間)ㆍ교녀(矯女)는
皆耳神名也(개이신명야) : 모두 귀를 맡은 신의 이름이고,
幽田亦耳神也(유전역이신야) : 유전(幽田)도 귀를 맡은 신의 이름이다.
紫煙素雲(자연소운) : 자연(紫煙)ㆍ소운(素雲)은
皆目精也(개목정야) : 다 눈동자이고,
大淵金醴玉英玉池醴泉(대연금례옥영옥지례천) : 대연(大淵)ㆍ금례(金醴)ㆍ옥영(玉英)ㆍ옥지(玉池)ㆍ예천(醴泉)은
皆口液也(개구액야) : 모두 진액이고,
靈根朱鳥(령근주조) : 영근(靈根)ㆍ주조(朱鳥)는
皆舌名也(개설명야) : 모두 혀의 이름이고,
通命(통명) : 통명(通命)은
舌神名也(설신명야) : 혀를 맡은 신의 이름이고,
正倫亦舌神也(정륜역설신야) : 정륜(正倫)도 혀를 맡은 신의 이름이고,
玄膺(현응) : 현응(玄膺)은 혀
舌下通津處也(설하통진처야) : 밑으로 진액이 통하는 곳이고,
崿峯白石羅千(악봉백석라천) : 악봉(崿峯)ㆍ백석(白石)ㆍ나천(羅千)은
皆齒也(개치야) : 모두 이빨의 이름이고,
中池(중지) : 중지(中池)는
口名也(구명야) : 입의 이름이고,
玉樓(옥루) : 옥루(玉樓)는
肩名也(견명야) : 어깨의 이름이다.
靈臺紫房絳宮赤城守靈丹元(령대자방강궁적성수령단원) : 영대(靈薹)ㆍ자방(紫房)ㆍ강궁(絳宮)ㆍ적성(赤城)ㆍ수령(守靈)ㆍ단원(丹元)은
皆心名也(개심명야) : 모두 심장의 이름이고,
龍煙含明(룡연함명) : 용연(龍煙)ㆍ함명(含明)은
皆肝名也(개간명야) : 모두 간장의 이름이고,
黃野常在魂停靈元(황야상재혼정령원) : 황야(黃野)ㆍ상재(常在)ㆍ혼정(魂停)ㆍ영원(靈元)은
皆脾名也(개비명야) : 모두 비장의 이름이고,
虛成皓華混康(허성호화혼강) : 허성(虛成)ㆍ호화(皓華)ㆍ혼강(混康)은
皆肺名也(개폐명야) : 모두 폐장의 이름이고,
威明龍曜(위명룡요) : 위명(威明)ㆍ용요(龍曜)는
皆膽名也(개담명야) : 모두 담(膽)의 이름이고,
太倉(태창) : 태창(太倉)은
胃名也(위명야) : 위장의 이름이고,
玄冥育嬰玄卿(현명육영현경) : 현명(玄冥)ㆍ육영(育嬰)ㆍ현경(玄卿)은
皆腎名也(개신명야) : 모두 신장의 이름이다.
幽關(유관) : 유관(幽關)은
兩腎間也(량신간야) : 두 신장의 사이이고,
隱龍(은룡) : 은룡(隱龍)은
肝膽也(간담야) : 간과 담이고,
長城(장성) : 장성(長城)은
小腸也(소장야) : 소장이고,
重樓(중루) : 중루(重樓)는
喉嚨也(후롱야) : 목구멍이고,
素瓊(소경) : 소경(素瓊)은
口津也(구진야) : 침이고,
三焦(삼초) : 삼초(三焦)는
心肝肺上氣也(심간폐상기야) : 심장ㆍ간장ㆍ폐장의 기운이고,
內芝(내지) : 내지(內芝)는
脈也(맥야) : 맥(胍)이고,
神華(신화) : 신화(神華)는
脾肺之間也(비폐지간야) : 비장ㆍ폐장의 사이이다.
桃康(도강) : 도강(桃康)은
精也(정야) : 정(精)이고,
黃庭(황정) : 황정(黃庭)은
五贓之中(오장지중) : 오장 가운데
通人氣脈之所也(통인기맥지소야) : 기맥(氣脈)이 유통하는 곳이고,
黃童(황동) : 황동(黃童)은
黃庭之氣也(황정지기야) : 황정의 기운이고,
黃婆(황파) : 황파(黃婆)는
胎息也(태식야) : 태식(胎息)이다.
四海(사해) : 사해(四海)는,
心爲血海(심위혈해) : 심장이 혈해(血海)이고,
腎爲氣海(신위기해) : 신장이 기해(氣海)이고,
腦爲髓海(뇌위수해) : 뇌가 수해(髓海)이고,
脾胃爲水穀海也(비위위수곡해야) : 비장ㆍ위장이 수곡해(水穀海)이다.
五湖(오호) : 오호(五湖)는
五贓之液也(오장지액야) : 오장의 진액이고,
九江(구강) : 구강(九江)은
小腸之氣也(소장지기야) : 소장의 기운이고,
三島(삼도) : 삼도(三島)는
頂心神也(정심신야) : 이마ㆍ심장ㆍ정신이고,
六池(륙지) : 육지(六池)는
五贓及脣齒間也(오장급순치간야) : 오장 및 입술ㆍ이빨의 사이이고,
神水金波(신수금파) : 신수(神水)ㆍ금파(金波)는
皆津液也(개진액야) : 모두 진액이고,
瓊液玉泉白雪陽酥(경액옥천백설양소) : 경액(瓊液)ㆍ옥천(玉泉)ㆍ백설(白雪)ㆍ양수(陽酥)는
皆精也(개정야) : 모두 정(精)이다.
三池(삼지) : 삼지(三池)는
膽舌小腸也(담설소장야) : 쓸개ㆍ혀ㆍ소장이고,
三房(삼방) : 삼방(三房)은
丹田之別名也(단전지별명야) : 단전의 이칭이고,
三宮(삼궁) : 삼궁(三宮)은
丹田中也(단전중야) : 단전의 가운데이고,
九室(구실) : 구실(九室)은
頭也(두야) : 머리이고,
五芽(오아) : 오아(五芽)는
五行也(오행야) : 오행(五行)이고,
三神(삼신) : 삼신(三神)은
三丹田神也(삼단전신야) : 세 단전의 신(神)이고,
六丁六甲(륙정륙갑) : 육정 육갑(六丁六甲)은
丁干甲干也(정간갑간야) : 정간(丁干)과 갑간(甲干)이다.
三奇太淸丹田符籍也(삼기태청단전부적야) : 삼기(三奇)는 태청(太淸)ㆍ단전ㆍ부적(符籍)이고,
八景(팔경) : 팔경(八景)은
八卦也(팔괘야) : 팔괘(八卦)이고,
六神(륙신) : 육신(六神)은
六甲六丁六腑也(륙갑륙정륙부야) : 육갑(六甲)ㆍ육정(六丁)ㆍ육부(六府)이고,
三淸(삼청) : 삼청(三淸)은
太淸上淸玉淸也(태청상청옥청야) : 태청(太淸)ㆍ상청(上淸)ㆍ옥청(玉淸)이다.
三元(삼원) : 삼원(三元)은
精氣神也(정기신야) : 정(精)ㆍ기(氣)ㆍ신(神)이고,
玉宸君(옥신군) : 옥신군(玉宸君)은
太淸尊稱也(태청존칭야) : 태청을 높여서 부른 이름이고,
九神(구신) : 구신(九神)은
合三元三丹三房也(합삼원삼단삼방야) : 삼원(三元)ㆍ삼단(三丹)ㆍ삼방(三房)을 합한 것이고,
紫霞殿蕊珠殿(자하전예주전) : 자하전(紫霞殿)ㆍ예주전(蕊珠殿)은
皆寓言也(개우언야) : 비유한 말이고,
三光(삼광) : 삼광(三光)은
日月星也(일월성야) : 해ㆍ달ㆍ별이고,
五靈(오령) : 오령(五靈)은
五星也(오성야) : 오성(五星)이고,
桃核(도핵) : 도핵(桃核)은
太一君名也(태일군명야) : 태일군(太一君)의 이름이고,
鬱儀(울의) : 울의(鬱儀)는
日仙也(일선야) : 해의 신선이고,
結璘(결린) : 결린(結璘)은
月仙也(월선야) : 달의 신선이다.
五仙(오선) : 오선(五仙)은
天仙地仙人仙鬼仙神仙也(천선지선인선귀선신선야) : 천선(天仙)ㆍ지선(地仙)ㆍ인선(人仙)ㆍ귀선(鬼仙)ㆍ신선(神仙)이고,
八仙(팔선) : 팔선(八仙)은
鍾呂等八仙也(종려등팔선야) : 종려(鍾呂) 등 팔선이고,
三關(삼관) : 삼관(三關)은
口手足也(구수족야) : 입ㆍ손ㆍ발이고,
又臍下三寸爲關也(우제하삼촌위관야) : 또 배꼽 밑 세 치가 관이다.
三老(삼로) : 삼로(三老)는
元老玄老老君也(원로현로로군야) : 원로(元老)ㆍ현로(玄老)ㆍ노군(老君)이고,
三魂(삼혼) : 삼혼(三魂)은
魂之衍名也(혼지연명야) : 혼을 늘여서 부른 이름이고,
三眞(삼진) : 삼진(三眞)은
魂心脾也(혼심비야) : 혼ㆍ심장ㆍ비장이고,
九微(구미) : 구미(九微)는
猶九神也(유구신야) : 구신(九神)과 같은 것이고,
三蟲(삼충) : 삼충(三虫)은
三尸也(삼시야) : 삼시(三尸)이다.
四緣(사연) : 사연(四緣)은
身心世事也(신심세사야) : 몸ㆍ마음ㆍ세상ㆍ사물이고,
二藥(이약) : 이약(二藥)은
內也外也(내야외야) : 안과 밖이고,
上藥三品(상약삼품) : 상약삼품(上藥三品)은
精氣神也(정기신야) : 정(精)ㆍ기(氣)ㆍ신(神)이고,
三家(삼가) : 삼가(三家)는
身心意也(신심의야) : 몸ㆍ마음ㆍ뜻이고,
五氣(오기) : 오기(五氣)는
精神魂魄意也(정신혼백의야) : 정(精)ㆍ신(神)ㆍ혼(魂)ㆍ백(魄)ㆍ의(意)이다.
鉛汞(연홍) : 연홍(鉛汞)은
鉛腎汞心也(연신홍심야) : 심장과 신장을 단련한 것이고,
聖胎(성태) : 성태(聖胎)는
神凝氣結也(신응기결야) : 정신이 어리며 기운이 응결된 것이고,
脫胎(탈태) : 탈태(脫胎)는
丹成也(단성야) : 단전이 이루어진 것이고,
玄關(현관) : 현관(玄關)은
未發前氣也(미발전기야) : 드러나기 전의 기운이다.
嬰兒(영아) : 영아(嬰兒)는
猶聖胎也(유성태야) : 성태와 같고,
玄牝(현빈) : 현빈(玄牝)은
念慮所寄處也(념려소기처야) : 생각이 붙어 있는 곳이고,
鼎爐(정로) : 정로(鼎爐)는
身心也(신심야) : 몸과 마음이고,
七返(칠반) : 칠반(七返)은
七火之成數也(칠화지성수야) : 칠화(七火)의 성수(成數)이고,
九還(구환) : 구환(九還)은
九金之成數也(구금지성수야) : 구금(九金)의 성수이다.
身中夫婦(신중부부) : 신중부부(身中夫婦)는
性情也(성정야) : 성정(性情)이고,
眞種子心(진종자심) : 진종자심(眞種子心)은
頭也(두야) : 머리이고,
三要(삼요) : 삼요(三要)는
眼鼻腎(안비신) : 눈ㆍ코ㆍ신장이고,
或精氣神也(혹정기신야) : 혹은 정(精)ㆍ기(氣)ㆍ신(神)이라고도 한다.
玄龜(현구) : 현귀(玄龜)는
腎也(신야) : 신장이고,
朱雀(주작) : 주작(朱雀)은
心也(심야) : 심장이고,
五氣朝元也(오기조원야) : 오기조원(五氣朝元)은
精魂魄意不動也(정혼백의불동야) : 정(精)ㆍ혼(魂)ㆍ백(魄)ㆍ의(意)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木父金公(목부금공) : 목부금공(木父金公)은
指五臟之相爲母子也(지오장지상위모자야) : 오장이 서로 어미와 자식의 역할을 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沐浴(목욕) : 목욕(沐浴)은
洗心滌慮也(세심척려야) :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씻는 것이고,
養火(양화) : 양화(養火)는
絶念慮也(절념려야) : 생각을 끊는 것이고,
了當(료당) : 요당(了當)은
虛極也(허극야) : 매우 빈 것이고,
龍虎(룡호) : 용호(龍虎)는
心腎也(심신야) : 심장과 신장이고,
抽添(추첨) : 추첨(抽添)은
陰陽外降也(음양외강야) : 음양(陰陽)을 밖으로 내리는 것이고,
三劍(삼검) : 삼검(三劍)은
斬煩惱斬色欲斬貪嗔也(참번뇌참색욕참탐진야) : 번뇌와 색욕(色欲)과 탐진(貪嗔)을 베는 것이고,
八瓊丹(팔경단) : 팔경단(八瓊丹)은
丹砂雌黃空靑琉黃(단사자황공청류황) : 단사(丹砂)ㆍ자황(雌黃)ㆍ공청(空靑)ㆍ유황(琉黃)ㆍ
雲母戎鹽隱石雄黃也(운모융염은석웅황야) : 운모(雲母)ㆍ융염(戎鹽)ㆍ은석(隱石)ㆍ웅황(雄黃)이다.
十二科(십이과) : 십이과(十二科)는
皆修爲成道節目也(개수위성도절목야) : 모두 몸을 닦아 도(道)를 이룩하는 조목이고,
九難(구난) : 구난(九難)은
衣食逼迫(의식핍박) : 의식(衣食)에 핍박받는 것,
尊丈激惱(존장격뇌) : 어른이 분함을 돋우는 것,
名利縈絆(명리영반) : 명예와 이익이 얽어매는 것,
恩愛牽纏(은애견전) : 은혜와 사랑이 끌어당긴 것,
災禍橫生(재화횡생) : 재앙이 뜻밖에 닥치는 것,
盲師約束(맹사약속) : 맹사(盲師)와 약속하는 것,
議論差別(의론차별) : 의논의 차이가 나는 것,
志意懈怠(지의해태) : 뜻이 게을러지는 것,
歲月蹉跎也(세월차타야) :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고,
十魔(십마) : 십마(十魔)는
富貴情欲恩愛(부귀정욕은애) : 부(富)ㆍ귀(貴)ㆍ정(精)ㆍ욕(欲)ㆍ은(恩)ㆍ애(愛)ㆍ
患兵聲色也(환병성색야) : 환(患)ㆍ병(兵)ㆍ성(聲)ㆍ색(色)이다.
道在五氣五臟(도재오기오장) : 도는 오기(五氣)와 오장에 있는 것인데,
而求之於金石草木(이구지어금석초목) : 쇠ㆍ돌ㆍ풀ㆍ나무에서 찾고 있으니
秦皇漢武之倫是已(진황한무지륜시이) : 진 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漢武帝)와 같은 무리가 이러한 사람이다.
苟能生神生氣(구능생신생기) : 참으로 정신과 기운을 배양하여
淸明在躬(청명재궁) : 맑고 밝은 덕이 몸에 있게 한다면
則可以占人元之壽(칙가이점인원지수) : 사람이 원래 타고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니,
有志者不惑於妄誕則幾矣(유지자불혹어망탄칙기의) : 여기에 뜻이 있는 사람은 허튼 말에 현혹되지 않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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